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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고조선〉조의 古記論

admin 2022-09-29 13:40:26 조회수 1,206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古記論 


김성환(경기도박물관)


〈고조선〉조의 고기에 대해서는 적어도 4백년 이상의 연구사가 축적되어 있다. 그간에 여러 검토와 비판이 이루어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성격부터 성립시기에 이르기까지 합의된 의견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만큼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고조선〉조의 고기가 담고 있는 단군신화는 단군의 어국과 향국을 역년으로 접근한 권근의 사례에서 확인되듯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변증을 통해 해석되어왔다. 17~18세기에는 변증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성리학의 눈을 통해 들여다 본 그 신화는 황탄하고 佛說에 둘러싸인 것으로 비판되었다. 괴력난신이 일연을 통해 神異로 전환된 앞 시대의 시선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지만 그들은 비판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단군신화를 조선 상고사의 서두에 재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어용학자들은 17~18세기 고기의 연구성과를 고조선 부정론에 역이용했다. 그들은 〈고조선〉조 고기의 단군신화를 일선동화를 위해 일본건국신화 안에서 재편하거나, 佛說에 근거해서 승려가 허구로 지어낸 가공의 仙譚에 지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필원잡기》와 《연려실기술》에서 고기 또는 삼한고기를 전거로 실은 단군전승을 삼국시대의 것으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했다.
〈고조선〉조 고기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는 비교적 근래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여전히 그 실체를 삼한고기 또는 해동고기로 검토하는 시각도 있고, 단일서명으로의 《고기》로 검토하는 견해도 있다. ‘옛 기록’이라는 자의를 존중하는 견해도 있다. 그 성립시기에 대해서도 《구삼국사》와 관련해서 검토되기도 하고, 〈북부여〉조 고기에서 분주된 “大遼 醫州界”와 관련하여 11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전반, 고려의 건국과 관련해서 검토되었다.
고려시대에 유통되었던 고기류의 자료에는 단군 고기류로 묶을 수 있는 5~6종의 자료군이 있었다. 그중에서 〈고조선〉조의 고기가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자료였다. 〈고조선〉조에서 고기는 《위서》와 보합의 관계에 있다. 그렇지만 고기의 성격에 대해서는 향후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추론을 통해 재검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