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역사문화과학기술 전문가 그룹 홍익재단 초청세미나
황국식민사관과 역사 문제에 대한 초청 특강
일시: 2018. 08. 29. 15시
장소: 홍익재단 세미나실
특강자: 송완범교수(고려대, 동경대 박사)
발표제목: 근대 일본의 조선 修史사업과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의 조선 인식
요약: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는 1874년(명치 7년)에 나가사키(長崎)에서 태어나 도쿄(東京)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의 고문서(古文書)와 고전적(古典籍)의 출판과 보급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구로이타는 일본 근대역사학의 성립에 깊이 관여한 학자이다. 이러한 구로이타 가쓰미의 ‘일본고문서학의 정립’이라는 성과와는 별도로, 구로이타의 40대 이후의 활동은 한반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즉, 구로이타는 1915년 조선을 처음 방문한 이래 16년간에 걸친 ‘조선사편수’(1922-38년)와 그 작업의 일환으로서 ‘조선고적조사’ 사업에 열중한 것이다.
구로이타 가쓰미에 대한 종래의 관심은 일본에서의 고문서학, 혹은 조선에서의 조선사편수 사업의 어느 한 부분에만 맞춰져 있어서 ‘구로이타사학’의 전체적인 의미와 전환의 사정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일본측의 입장에서 보면 구로이타는 일본의 사료학을 정립한 학자이며 도쿄제국대학에서 30년 이상의 교편을 잡은 관계로 일본사학계의 중요한 위치를 점한, 어느 모로 보더라도 모든 것이 선인(善人)의 이미지인 것이다. 반면에 한국측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사 왜곡의 총사령탑 역할을 한 전형적인 식민사학의 대표자이자, 현재의 한일 양국의 역사인식의 차이를 낳은 잊을 수 없는 악인(惡人)의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에 구로이타에 대한 이전의 단선적인 평가와는 달리, 복안적으로 접근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구로이타사학’에 대한 세부 내용을 분석, 정리해 보고 그 영향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식민지 시대의 식민사학자들 중에서도 구로이타는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면에서 한․일 양국의 사학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존재가 아닌가 하고 여겨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구로이타의 흔적은 어디까지나 ‘일본중심주의’에 입각한 것이었다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의 구로이타의 사료에 입각한 고문서학의 확립과 조선에서의 그의 경험의 확산은 조선사 연구에 있어 가장 기본인 사료를 취사선택했고 재배열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료의 편향적이고 의도된 재단은 조선사 연구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한계를 가져 올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구로이타의 작업은 식민지 조선의 본질적인 지배와도 관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