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홍익재단 세미나 공고] 근대 일본의 정사 편찬과 조선에 끼친 영향 (2018.12.0

본부 2018.11.29 조회수 3720

근대 일본의 황국식민사관과 동아시아 고대사 세미나


제목:  근대 일본의 정사 편찬과 조선에 끼친 영향 - 조선사 편수 과정을 중심으로

특강자: 심희찬 교수( 리츠메이칸 대학 박사)

일시: 2018. 12. 04. 15:00

장소: 재단 회의실

 

개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의 정책에 따라 일본 역사 편찬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에 대해 개관한다. 또한 이 작업이 조선에 폭력적으로 이식되는 과정과 식민지화를 위한 조선사 편찬 사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메이지유신 이후 메이지 정부에 참여하는 관변학자들에 의해 ‘일본사’라는 것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한국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역사와 신화를 분리하는 관변사학의 제도화는 일본과 황실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한국사를 일본사의 영역에서 잘라내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라기보다 정치적 위협을 회피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했고, 이후 식민지화를 통해 한국이 제국일본의 판도에 포함되자 양자의 관계가 또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일본 내에서 좌절한 정사편찬의 기획이 식민지조선에서 새롭게 시도되었고, 조선총독부는 이를 통해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역사적 필연임을 주장하고자 했다. 제국대학에서 관변사학의 훈련을 받은 역사학자들은 이 점을—신화의 기술에 기대지 않고—과학적으로 증명해내고자 노력했다. 그러던 와중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정사편찬의 방침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는데, 과학적 실증연구를 추구한다는 전제는 도리어 더욱 강화되었다. 제국일본의 정사편찬 시스템이 거의 그대로 도입되었고 『대일본사료』, 『대일본고문서』, 『대일본유신사료』 등을 본뜬 『조선사』의 편찬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정사편찬의 문제를 일국사의 관점에서 생각해온 기존의 연구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일본의 근대역사학 그 자체에 내재된 식민주의의 성격을 부각시켜준다.

이 글에서 밝히고 싶었던 것은 이렇게 ‘식민사학’과 ‘근대역사학’이 그 인식론과 방법론에 있어서 거의 일체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과학적,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식민사학에 준엄한 판결을 내리려는 태도를 취하는바, 이는 근대역사학과 식민사학이 공유하는 불가분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 알맹이 없는 비판에 불과하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역사서술을 지향했던 제국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식민주의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본문에서 소개한 것처럼 식민지의 정사편찬은 몇 가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 근본적 원인의 하나로서 일본사와 한국사의 관계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방식의 배제를 통해 문제를 덮어두려한 관변역사학자들의 태도를 지적하고 싶다. 한국사를 잘라내면서 성립한 일본의 근대역사학은 그 태생에 있어서 식민주의적 폭력을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식민사학의 극복은 곧 근대역사학의 극복에 직결되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근대역사학이 한국과 대만, 나아가 중국의 근대역사학 형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는 식민사학 연구는 식민사학의 극복은커녕, 그 재현을 반복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