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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국가 형성 초기에 이루어진 치수사업과 그 내용

문치웅, 김은진 2018-02-07 14:56:39 조회수 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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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정착 생활은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세계 4대 문명으로 불리는 황하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더스 문명, 이집트 문명이 모두 黃河와 長江,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인더스강, 나일강이라는 큰 강을 끼고 있으면서 정착 생활이 가능한 지역들을 중심으로 발생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처럼 사람들의 집단생활을 위한 환경은 기본적으로 물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정착지에 대한 교통, 행정, 정치, 조세 등의 사회적 기반 및 제도적 장치들이 단계적으로 체계화 되었다.

 

주거 및 농경에서 필수적인 물 문제는 크게 생명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서의 측면과 수해로 인한 재난관리 측면의 관점에서 관리되어왔다. 물에 의한 피해의 복구체계 및 예방책 마련, 물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한 수리 시설의 정비와 관개시설의 건설로 발전하면서 물과 관련된 활동은 관개·운하 등의 다양한 형태의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일반적으로 치수(治水)라 하며, ‘물을 다스리다’라는 의미로 이해되어 왔다. 사마천이 저술한 『史記』 「夏本紀」에는 고대국가 형성 초기에 대홍수(deluge)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하여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책임자로 임명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치수 문제를 해결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치수는 기본적으로 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인류의 문명사를 통해 볼 때 이미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 고대사 관련 사료들 중에서 치수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문헌으로는 『書經』 「禹貢」이 있으며, 『史記』 「夏本紀」는 이를 바탕으로 기록된 것이다. 「禹貢」은 치수사업의 실무책임자로 알려진 우(禹)가 행한 치수의 과정과 내용에 대한 기록으로, 치수사업에 대한 결과보고서적인 성격이 강하다. 「夏本紀」에서는「禹貢」의 내용을 참고하여 치수에 대한 내용과 실무책임자인 우의 공적, 더 나아가 우 및 당시 지도자들간의 대화를 통해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 등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또한 『前漢書』 「地理志」에서도 앞의 두 문헌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치수사업의 지리적 범위를 언급하였다.

 

이들 문헌에서 고대의 치수와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면, 홍수에 의한 피해 복구와 피해 예방을 위한 관개, 수리사업과 같은 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업이 기본을 이룬다. 그러나 『書經』, 『史記』, 『漢書』에 기술된 치수의 내용을 보다 상세히 분석해 보면 이러한 물관리(water management) 또는 수리사업(water resource management project)과 관련한 것들은 치수의 일부분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수 사업의 주요 내용으로는 사람들의 정착생활을 위한 환경조성과 원활한 통치를 위한 행정구역 개편(administrative district reorganization), 도로 및 하천과 강을 이용한 교통 체계(transportation system)의 정비, 토지등급제(land grading), 지역적 특성에 맞는 산업 및 특산물 재배 구조의 확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세금부과 체계(tax system)제정 등이 있다. 또한 통치 및 관리 정책으로 중심지를 기준으로 지역을 나누어 관리 통제하기 위한 제도도 만들어졌다. 

 

따라서 고대국가 형성기에 이루어진 치수의 개념은 단순히 물관리라는 일차원적인 문자적 해석의 개념을 넘어 국책사업적 관점에서 바르게 살펴보고 재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치수에 대한 또는 이와 관련한 연구가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치수를 다룬 연구 결과들을 분석해보면 치수 자체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물관리라고만 보는 단편적인 인식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수를 신화적 또는 역사적 사건으로 볼 것인가에 관한 논의와, 책임자로써 우가 보인 행동과 자세가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가 있다. 또한 치수 사업이 행해진 영역 문제를 다룬 연구 결과들과, 당시의 문화를 고고학적 접근을 통해 그 실체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시간적인 거리감과 참고 가능한 자료의 한계성, 그리고 기록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고고학적 사료들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우에 의한 치수를 이해하고자 하는 다방면의 시도로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치수사업의 본질적 이해와 이 사업을 통한 결과물과 그 영향 등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최근까지 진행되어 온 동아시아 정착 문명의 기원과 형성과정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 추세를 보면, 대체로 문명의 개념과 특징, 중국문명 형성의 시간적·공간적 범위, 주요 지역에서의 문명 형성과정, 출토된 유물, 유적을 통해 알게 된 활동 중심지, 주거터, 제방시설, 도자기 등으로 대표되는 제반 문명요소의 발생과 발전 형태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주요 발견 유물과 유적들의 연대는 대략 B.C. 2500 ~B.C. 2000년 전의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대부분이 치수사업의 이루어진 지역적 범위 내에 속한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굴 성과는 『書經』의 「禹貢」과 『史記』의 「夏本紀」 등의 문헌 기록에 나타나는 치수 사업에 대한 역사적 증거 자료로써 가치가 있다. 

 

치수 연구의 중요성은 동아시아 고대국가 초기의 국가적 차원의 대사업으로 당시의 사회상과 시대적 상황, 정치, 문화, 기술, 제도 등에 대한 이해를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치수는 시대적으로는 고조선 건국 초기의 시기에 해당하며, 지역적으로는 천명(天命)에 의해 다스려지며 천하(天下)라 불린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의 황하를 비롯한 주요 하천과 산,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진 대사업이다. 천하의 지역을 9개 행정구역으로 개편하여 구주(九州)로 한 것은 치수사업의 핵심 내용에 속한다. 

 

이 사업과 관련하여 요(堯), 순(舜), 우(禹), 고요, 후직(后稷)과 같은 당시의 주요 인물들의 활동이 문헌에 등장하며, 이때에 단군왕검의 아들인 태자 부루(夫子扶婁)를 창해사자(滄海使者)로 임명하고 치수사업이 펼쳐지고 있는 도산(塗山)에 가서 우와 회동하였다는 언급이 신채호의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 기록되어 있다.그러므로 치수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은 고조선 건국 초기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과 동아시아 고대국가 형성기의 지역적 관계, 역사, 문화, 기술, 제도를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天의 명령(天命)에 의해 천하의 주요 지역을 대상으로 22년에 걸쳐 펼쳐진 치수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와 그 내용, 수행 과정과 결과물에 대하여 통합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를 통해 단순 물관리 차원으로 정의되었던 치수에 대한 문자 해석적 개념을 넘어 체계적인 행정구역 개편, 제도정비, 교통망 체계 구축, 조세제도 마련을 포함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으로서의 치수의 실체와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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