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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의 고조선 기원 연구의 비판적 검토

조원진 2022-05-09 09:48:22 조회수 610


 

* 이 논문은 홍익재단의 연구비 지원으로 수행된 연구결과임. 


시라토리 구라키치의 단군 연구의 핵심적인 내용은 환웅이 강림한 태백산을 지금의 묘향산으로 보고 단군전설은 불교문화와 관련하여 승려가 만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불교 경전의 牛頭旃檀에서 檀木이란 명칭이 나왔으며 단군전설이 만들어진 시기는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고구려의 국력이 절정에 이르렀던 장수왕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三國遺事』에서 단군은 檀君이 아니라 壇君이라 기록했으며 우두라는 명칭은 이미 불교 전래 이전부터 확인되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三國遺事』의 태백산을 묘향산으로 보기는 어렵다.

시라토리는 고조선의 기원에 대해서 기자조선설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나라 사람의 이주에서 비롯된 것처럼 간략히 언급할 뿐 명확하게 서술하지 않았다. 시라토리가 기자가 조선의 왕이 된 것을 부정한 것은 당시 우리학계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라토리는 기자 동래를 부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부왕준왕의 이름도 易經에서 따온 것으로 보았다. 또한 그가 滿洲歷史地理에서 한사군부터 역사지리를 다룬 것은 사실상 고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역사와 독자적인 기원을 부정했음을 의미한다. 이후 일본관학자들에 의해 집필된 朝鮮半島史朝鮮史 등은 고조선의 역사와 기원 문제를 다루지 않고 한사군부터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 글자의 유사성만으로 고조선 왕들의 이름을 易經에서 가져왔다고 보기는 어렵다三國志에서 고조선의 왕을 기자의 후손으로 기록한 것은 후대의 윤색이라도 구체적인 실체가 기록된 부왕과 준왕의 역사성까지 부인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한 시라토리의 연구는 근대 일본학자들의 우리 역사 왜곡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이 된다.


【주제어】

고조선, 단군, 기자, 단군조선, 기자조선, 시라토리 구라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