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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제후와 방군│김정열 교수(숭실대)

admin 2022-11-02 09:21:31 조회수 861


고대의 제후와 방군


김정열 교수(숭실대)


주인(周人)에게 천하는 주방(周邦)과 사방(四方)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주 왕실의 천하 통치는 실재로는 주방에 의한 사방의 지배였다. 그런데 주에 의해 지배되어야 할 이 사방은 단순히 방향으로 표시되는 물리적 공간은 아니다. 주인들에게 사방은 만방(萬邦)’으로 채워진 공간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주의 사방 통치는 바꾸어 말하면 곧 무수한 방을 통치하는 것이었다. 방군(邦君)은 바로 그 사방에 산포(散布)되어 있는 방의 군주이다. 그런데 이 방은 현실적인 여건에 따라 언제든지 서주왕조에 복속할 수도 또 이반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 왕실에게 방은 적절하게 통제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서주시대의 제후에게 부여된 책무는 임지로 부여 받은 특정 지역에서 ()하는데 있었다. ‘는 관찰하다, 관망하다, 혹은 척후하다는 의미의 동사이다. 금문 자료에서 확인되는 제후의 실제 활동 역시 임지 일대의 군사활동이나 징세 등의 주 왕실의 지배력 관철을 위한 각종 행위에서의 중간 매개의 그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를 관찰하다, 관망하다, 혹은 척후하다고 이해하는 해석은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서주시대의 제후에게 제후 고유의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그 봉건영주적인성격이 아니라 주왕으로부터 부여받은관찰자로서의직임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서주의 제후는 본디 외관(外官)으로서의 성격을 농후하게 지니고 있었다. 제후가 관망하거나 관찰하다고 했을 때 그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해당 지역의 방이었다. 즉 주가 천하를 통치한다고 했을 때, 그 통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방에 산포되어있는 방이었다. 서주 국가의 구조를 이해할 때, 서주왕조의 대극에 놓여 있는 것은 어디까지 만방이었다. 결국 주의 지배체제를 봉건제로 정의하여 왕실과 제후를 국가 지배구조의 두 축으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견해는 옳지 않다.